중국인들과 함께 한 유럽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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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 방학을 맞아, 아니 사실은 결혼 16주년을 맞아 오랫동안 별러왔던 유럽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해마다 결혼 기념일을 전후하여 조촐한 기념행사를 갖기는 하였지만 그동안은 아이들이 비교적 어렸기 때문에 장거리 여행은 하지 못했고, 아이들을 떼어놓고 둘이서만 여행을 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큰 15주년에는 유럽여행을 가기로 했었는데 친정아버님의 칠순잔치와 맞물려 부득히 올해로 미뤄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번에도 여러가지 여건을 고려해볼 때 도저히 여행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으나,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가자고 굳게 약속한 데다가, 바로 얼마전 제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버린데 크게 충격을 받아, 살아있는 동안이나마 잘 살아보자는 생각으로 모든 일을 잠시 내려놓고 떠나게 되었습니다.

짧은 일정 때문에 중국여행사를 통해 패키지로 다녀왔습니다. 한국여행사의 패키지와 비교해서 거의 절반가격이어서 싼게 비지떡 아닐까 했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다만 호텔조식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식사가 모두 중식이어서 그게 좀 아쉬웠지만, 단체여행 식사치고는 중국국내 여행에서 먹었던 것보다 훨씬 나았습니다. 모두가 화교들이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입맛이 서구화되어서인지 특유의 향이 적어 중국음식을 싫어하는 남편도 고추장을 꺼내지 않고도 잘 먹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몇가지 재미있는 사실들을 발견했습니다.

첫째는 이제 막 대학입시나 고등학교 입시를 끝낸 자녀들을 동반한 가족이 많았다는 점입니다. 중국도 한 자녀 만을 낳기 때문에 좋은 고등학교 대학교에 보내기 위해 온 가족이 필사적으로 노력합니다. 아마도 혹독한 입시전쟁을 치러낸 아이와 부모들이 이제 한 시름 놓고 명문학교에 입학한 것을 기념하여 온 듯 했습니다.

둘째는 유럽 어느 여행지를 가든 중국 단체관광객들로 붐볐다는 점입니다. 갑자기 주변이 좀 소란스러워 돌아보면 어김없이 한 무리의 중국여행객들이었습니다. 숫적으로 일본이나 한국 관광객보다 월등히 많더군요. 루브르 박물관이나 베르사이유 궁전 같은 데서는 행상을 하는 흑인들이 유창한 중국어로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량콰이 량콰이!"(2달러, 2달러), "피엔이 피엔이!"(싸요, 싸요)라는 말에 중국인들은 "타이꾸이, 타이꾸이"(너무 비싸요) , "이콰이, 이콰이"(1달러)하며 실갱이를 하였습니다.

세째는 중국사람들 정말 부자 많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떠나기 전 우연히 '중국인들이 유럽 여행에서 현금을 많이 가지고 다니며 물쓰듯 한다'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저는 쇼핑이 아니라 세상구경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좀더 가져가라는 남편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꼭 필요한 만큼의 경비만을 가져갔습니다. 쇼핑을 할 때마다 중국여행객들은 매번 눈에 빛을 내며 이것 저것 다투어 사고 남편과 저는 일찌감치 상점을 빠져나와 차라리 거리를 구경했습니다. 그나마 네덜란드에서는 아이들 먹을 치즈라도 살 수 있었는데, 파리에서는 향수니 뭐니 하는 명품들만을 판매하니, 평소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는 저로서는 좀 사고 싶어도 살 것이 없더군요.

마지막은 사적인 이야기인에, 이번 여행을 통해 제가 앞으로 좀더 중국에 머물면서 해야 할 일이 있음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계획은 사람이 하고, 결정은 하느님이 하신다'는 성서 말씀처럼 저는 많은 것들을 계획했었고 주님은 그 중 한가지로 결정을 해주셨습니다. 제가 저의 진로를 놓고 고민하여 이길 저길을 헤메이고 있을 때 주님께서 명쾌하게 아닌 길들을 다 막아주신 것입니다. 떠나는 날 "서류심사 결과가 좋으니 면접에 꼭 참석해 주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미리 전화해서 면접 예정날짜까지 다 알아보고 여행일정도 조정해 놨던 건데, 순간 많이 흔들렸지만, 남편과의 약속이 더 중요했고, 아직은 한국에 돌아갈 때가 아니라 여기에서 좀더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아쉬울 것도 없고 마음이 아주 편합니다.

어느새 긴 방학도 끝나갑니다. 개학도 기다려지고 가을도 기다려집니다. 더이상 한여름밤의 소나기 퍼붓는 소리를 들을 수는 없겠지만 들떴던 마음을 안정시키고 차분히 책상앞에 앉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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