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시의 활용과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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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주재원, 아스피린과 같은 '관시' 갈고 닦아야

중국 주재원(駐在員)들의 삶은 고달프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그들의 일상생활이
고달픈 게 아니라 지구상에서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중국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하는 것이
고달픈 것이다. 예측 불가능한 상대를 늘 주시하고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짜야하는
일은 분명 힘들고 고달픈 일이다.

나는 주변과 이웃에 사는 많은 주재원들의 삶을 오랫동안 보아왔다. 늘 피로한 얼굴에 몸
은 지친 상태가 거의 대부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누구를 붙잡고 대화를 해 보
아도 얼굴 표정이 밝은 사람이 없다. 더구나 중국 2-3년 차 주재원들은 중국을 무서워(?)
하기도 한다. 자기가 맡고 일이 과연 제대로 될 수 있을까에 대한 회의도 있다. 당연한
것이다. 본인이 들어온 중국 땅이 지난 1년간은 그렇게 어렵지 않게 보였지만 1년이 지나
고 대략 2년 정도가 흐르면 어느덧 자기가 밀림 한가운데 와 있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
다. 그나마 이런 사실을 아는 주재원들은 다행이다.

중국에서 우리는 흔히 처음 온 주재원이 아주 바쁘고 활기 있게 움직이며 주변 사람들에
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밝은 모습으로 자랑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그 시기가 “주재원
의 황금기”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주재원의 황금기는 대개 1년이 채 안 되어 끝이 난
다. 왜 주재원들의 처음 1년차는 황금기인가?

결론적으로 처음 1년은 그야말로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상대방인 중국 거래처나 파
트너도 처음 중국에 온 주재원에게 소위 작전(?)을 걸지 않는다. 중국말은 어설프거나 거
의 전무하고 앞뒤 가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천방지축 날뛰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하겠는
가? 중국인 특유의 성격으로 상대방 측은 새로 온 신입 주재원을 관찰한다. 주재원 성격
이 어떤지, 실력은 있는지, 본사의 직급은 어떤지, 가족 관계는 어떻고 친구 관계는 어떤
지를 잘 살펴보는 것이다.

주재원이 이렇게 뭘 모르고 중국 생활 적응에 발에 땀이 나도록 헤매는 동안에 상대 중국
인은 이미 한국 주재원(파트너)에 대한 웬만한 정보를 다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중국에 합작이나 투자 방식으로 들어온 한국 회사의 주재원 대표는 한동안 투자를 집행하
는 갑방의 권리와 특권을 대략 1년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행복한 상황도 맞이하게 된다.

중국인들이 갑방을 대하는 태도는 정말로 눈물겹도록 감동적이다. 모든 세심한 배려와 생
활상의 곤란한 문제도 중국측의 전폭적인 지원과 아낌없는 성원 덕분에 아주 신속하고 민
첩하게 처리가 된다. 누가 중국 사람들을 느리다고 했는가? 이토록 친절하고 인간성 좋은
사람들을 “왜 중국 놈(?)들은 믿을 수 없다”고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달콤한 중국 주재원 생활은 안타깝게도 금방 흘러간다. 1년이라는 중국생
활이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원래 아무런 시련과 고통 없이 흘러가는 시간은 꿈같이 흘
러가는 법이다.

거듭 말하지만 주재원에게 이런 달콤한 밀월여행이 마냥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투자가
다 이뤄지고, 공장이 거의 완성되어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다던지, 아니면 대충 가족들
의 생활과 아이들의 학교문제 그리고 비자와 주변 교통의 파악 그리고 몇 번의 중국 측과
의 아름다운 건배가 끝나고 주말에는 여기저기 가까운 곳에 여행도 다녀보며 나름대로 자
신감(?)이 충만해 있을 때 시련의 골고다 언덕이 찾아온다. 아름다운 호수와 융단 같은
잔디에서 놀던 소풍이 끝나고 전투를 하러 숲과 정글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시간이 온 것
이다. 전투가 무엇인가? 총 한 방에 죽는 것이 전투 아닌가?

어느 날부터 주재원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고 아무리 웃으려고 애를 써도 마음속에 담겨진
고통과 중국인이 주는 아픔 때문에 도저히 그 표정이 밝아지질 않는다. 사업이 시작되거
나 공장이 본격적으로 가동이 되면 왜 그리도 이해할 수 없는 문제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지.

그 동안 꿈 같이 흘러간 1년의 세월과는 너무나 차이가 난다. 이런 동네가 중국이고 이런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중국인이란 말인가? 통탄의 한숨이 나오기 시작
한다. 그러나 이미 자기가 지닌 무기는 기껏해야 옆에 둔 조선족 통역 달랑 한 명일 경우
가 많다. 함께 잘 해보자고 수많은 밤과 낮에 그렇게 목청을 높여 건배를 외치던 인간들
은 어느새 적군이 되어 호시탐탐 우리 측 돈이나 잡아먹으려고 한다.

야심차게 세워서 본사에 보고했던 연간 계획서는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아무리 생각하
고 또 생각해도 실현 불가능한 것이 된다. 어찌 한숨이 안 나온단 말인가? 그래서 어느날
만난 주재원이 고개를 푹 숙이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나는 “아, 저 사람이 드디어 1년차
가 끝났구나!”하는 생각을 한다. 중국어는 여전히 허우적대고 눈빛은 충혈돼 있으며 자
신감은 온데간데없다.

중국을 너무 쉽게 보았던 거다. 주재원 생활에 너무 많은 꿈과 이상을 싣고 왔던 것이다.
아주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중국과 중국인을 너무 쉽게 본 것은 잘한 것이 아니
다.

주재원들의 업무는 일정 한계와 주어진 사업의 특성과 성격에 맞게 한정되어 있다. 개인
사업자도 그런 면에서는 같다. 우리가 중국에서 중국인과 관시(關係)를 맺는다고 해서 자
기 사업과 업무 범위를 뛰어넘어 무수한 중국인과 관계를 맺을 수는 없다. 주재원들도 마
찬가지다. 일정한 조직이 있으면 잡다한 업무와 간단한 일은 조직에서 처리가 된다. 공장
같은 대단위 사업장도 그에 따른 조직을 갖추면 기본적인 업무는 돌아간다고 봐야 한다.

사실 주재원들을 괴롭히는 것은 이런 기본적인 시스템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이상의 것
에 있다. 그 이상의 것은 무엇인가? 당연히 그것은 수익을 내는 일이고 수익을 창출했다
는 결과물을 한국 본사에 보란 듯이 제출하기 위한 일이다. 아주 당연한 것이지만 중국에
서의 수익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주재원의 삶이 고달픈 것이다. 즐겁고 신났
던 지난 1년의 중국생활이 몹시도 그립지만 그 영광스러웠던 시절은 다시 오지 않는다.

그래서 초창기 중국에 와서 고생만 하다가 정글의 낙오자가 되어 간신히 몸만 들고 한국
으로 가는 주재원이 허다하다. 사실은 고생으로 치면 초창기에 중국에 와서 터를 닦은 사
람이 제일 많이 고생을 한 셈이지만 결과가 좋지 않은 마당에 고생 운운하며 한국 본사에
다 좋은 보직을 달라고 할 수는 없다. 승진은 언감생심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초창기 중
국에 온 주재원들 중의 90%는 이렇게 다 깨져서 들어갔다고 보면 된다. 아주 운이 좋아야
본전이 되는 곳이 중국이다.

어쩌면 초기 주재원으로 나온 사람들은 3-4년 동안 마음고생과 몸고생하며 사업의 기초만
닦다가 간다고 봐야 한다. 중국에서 단기간에 수익을 내는 일은 그처럼 어려운 일이다.
고생하며 일구어 놓은 것은 알지만 본사 입장에서는 하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한국으
로 발령을 받은 주재원은 이제야 조금 중국 시장과 중국의 관시를 알 것만 같다. 조금만
더 시간이 주어진다면 그토록 바라던 흑자 경영이 될 것만 같은데, 한국에서는 빨리 짐을
싸라고 하고 후임자는 이미 결정이 나서 대기 상태다. 아마도 이런 상황에서 중국 현지에
서 퇴사를 하고 아예 개인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꽤 있을 것이다. 한국에 들어가 봐야 승
진이 되나 앞날의 보장이 있나?

중국 땅에서의 성공이 어렵다고 하는 의미는 바로 이런 것에 있다. 중국 직원들을 닦달한
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중국 측에 인간적으로 읍소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
무리 호소를 하고 설득해도 바위처럼 꿈적도 않는 중국사람 앞에서, 아무리 효율과 신속
함을 강조해도 여전히 느림보로 걸어가는 중국 직원들 앞에서 주재원들의 한숨은 깊어만
갈 수밖에 없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러나 중국도 사람 사는 땅이다. 결국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돌보는 법이다. 피나
는 노력과 치밀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 중국에 처음 왔을 때부터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
다. 그래서 중국 주재원들에게는 처음 1년차 준비가 아주 중요하다.

앞서 말했지만 중국인과의 관시는 우리 몸에 빗대어 말하면 신체가 조금 이상할 때 먹는
아스피린 같은 것이다. 감기가 아주 심하게 들면 중국 병원에서는 가능한 엉덩이에 맞는
주사를 처방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의사는 링거 주사를 처방한다. 지방마다 다를 수는 있
다. 아무튼 감기가 들어서 병원에 가도 링거 맞는데 최소 3시간 이상이 간다. 어떤 몸의
증세는 약 한 번 처방으로 끝이 나지만 이렇듯 때로는 링거를 3-4시간 맞아야 할 때도 있
다.

중국의 관시는 이런 속성과 같다. 주변의 필요한 사람들과의 관시를 잘 해 놓으면 업무에
문제가 생겼을 때 쉽게 해결이 가능하다. 앞서 말했듯이 한 알의 약이 되는 관시가 있고
때로는 링거 역할을 해주는 관시도 있다. 비록 3시간 이상의 고통스런 주사를 맞는다 해
도 병이 깊어지는 것 보다는 낫지 않은가? 아스피린과 링거 같은 중국의 관시!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다만, 중국에서의 관시를 수술해야 할 만큼의 중병마저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곤
란하다. 중병이 들어서 수술이 필요한 경우에는 만가지 관시가 필요 없다. 수술대에 올라
가야 하는 사람은 바로 본인이고 막대한 수술비용과 치료비도 모두 고스란히 본인 부담이
된다. 한국 회사가 치러야 하는 실패의 대가도 마찬가지다. 관시가 만병통치약이 아니라
는 뜻이다. 무엇보다 먼저 기본적으로 몸을 튼튼히 해야 한다. 기본적인 시스템이 안정되
고 잘 돌아가야 감기가 걸려도 극복이 된다.

그래서 주재원들의 관시는 앞과 뒤가 분명해야 한다. 무엇이 최고 중요한 관시이고 무엇
이 덜 중요한 관시인지를 알아야 한다. 처음 중국으로 부임 할 때 이런 원리를 알고 와야
한다. 모든 것이 다 그렇지만 사전 준비 없이 이방의 땅에 와서 벼락 같이 성공한 예는
역사상 하나도 없다. 중국은 정글 같은 곳이다. 낮에는 그럭저럭 움직이는 듯해도 밤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관시를 맺기에 여념이 없는 곳이 중국이다. 아무
병에나 아스피린을 쓰면 안 된다. 내 몸의 상태를 먼저 알고 상대의 상태도 잘 알아야 한
다. 그래서 필요할 때마다 적당한 약을 써야 하는 것이 관시의 원리다. 우선은 먼저 알아
야 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는 중국 고사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직원들이 단순하고 게으르게 보여도 그들과의 관시도 중요하고, 중국 측과의 피나는 노력
의 관시도 중요하다. 당장 아프다고 바로 수술실로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굳이 결론이
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중국에서의 관시는 상대방의 의도를 미리 알아내는 데 있다고 봐
야 한다.

상대가 왜 저럴까? 왜 중국 직원들이 저럴까? 왜 중국의 관련 기관은 저럴까? 이렇게 머
리를 싸매고 고민한다면 그 사람의 관시는 아직 덜 여문 관시다. 제대로 된 관시는 “왜
그럴까?” 가 아니고 저 사람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제대로 된
관시라고 봐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중국 땅에서 조조(曹操)와 친구가 되고 제갈공명(諸
葛孔明)의 지혜를 가져야 한다.

먼저 상대의 의중을 알고 전략을 짜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조금만 밀고 당기
다 협상하면 안 될 일도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에 상대와 업무가 아닌 중국 특유의
관시를 맺어야 하고 그 관시를 계속 갈고 닦아야 한다. 어쩌면 그것이 주요 업무일 수도
있다. 그 정도가 되어야 중국 짬밥이 웬만큼 쌓이는 것이다. 모쪼록 지금도 중국의 험난
한 정글과 황량한 벌판에서 전투를 치루고 있는 중국 주재원들의 건투와 승리를 빈다. 주
재원들이여 힘을 내라!

위 내용은 <온바오>라는 중국 내 교민 잡지에 실린 이병우 씨의 글이다.
필자의 견해에 100%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새겨볼 내용이 있어 이곳에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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