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인뉴스

규제 혁신 없이는 대학의 혁신도 없다
  • 공유
    • 트위터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인쇄
  • 즐겨찾기

교육을 둘러싼 환경은 시시각각 변하는 중이다. 학생들은 오프라인을 떠나 온라인 수업에 익숙해졌고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플랫폼으로 다양한 활동을 경험하고 있다. 정작 교육은 이러한 환경 변화를 쫓아가고 있지 못하다. 얽히고설킨 규제 때문이다.

2019년 본지는 문재인 정부 출범 3년 차를 맞아 ‘전국 대학 총장 고등교육정책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120여 개 대학 총장들 중 65개 대학 총장이 응답한 이 설문에서 총장들은 문재인 정부 고등교육 정책의 문제 1순위로 ‘간섭과 통제 강화(46.2%)’를 꼽았다.

또 같은 해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발표한 ‘대학 규제개선 과제 협의 결과’ 리포트에 따르면 가장 많은 건의과제는 ‘대학설립·운영/시설’이 16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대학행·재정제도 개선이 14건, 산학협력 13건 등의 순이었다. 해당 과제는 대학의 자율성을 저해하는 규제를 발굴해 관련 부처에 개선을 건의하고 제도를 개선하며 규제를 완화하자는 취지로 1차 검토결과 총 66건이 조사됐다.

2년이 지났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7월 열린 대교협 하계세미나에 모인 총장들은 여전히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를 개선해 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대교협이 실시한 ‘2021년 대학 규제 및 혁신 사례 조사 결과’에서도 대학 총장들은 △대학 설립·운영 4대 요건 기준 완화 △대학혁신지원사업비 용도 제한 폐지 △대학기본역량진단 지표 개선 등 규제 정비를 촉구했다.

■평가에 잠식당한 대학= 현재 대학을 가장 옥죄는 것은 각종 평가다. 대학본부가 수행하는 평가만 살펴봐도 5년 주기의 대학기관평가인증, 대학기관평가인증 모니터링, 매년 시행하는 산업계관점 대학평가 등이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이 관할하는 교원양성기관평가는 4년 주기, 대학 기본역량진단은 3년 주기로 이뤄진다. 한국연구재단의 교육국제화역량인증 역시 3년 주기로 평가가 이뤄진다. 대학은 거의 해마다 평가 준비 상태인 셈이다. “보고서만 쓰다가 1년이 간다”는 현장의 볼멘소리는 과장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대학 기본역량진단은 ‘대학 살생부’라 불리며 대학의 재정에 큰 영향을 주는 평가 제도다. 3년 단위로 이뤄지는 진단은 사실상 이름만 바뀐 대학구조개혁에 불과했다. 박근혜 정부가 도입한 ‘대학구조개혁 평가’는 대학을 A~E 등급으로 나눠 운영이 미흡한 대학에 강제적인 정원 감축과 동시에 재정 지원을 끊어버리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B등급에 들더라도 정원의 일부를 감축해야 했고 D등급 이하로는 국가장학금과 정부재정지원사업 참여에도 제한을 뒀다.

문재인 정부는 대학의 자율을 강조하며 대학재정지원 정책의 대전환을 예고했다. 그 결과가 대학 기본역량진단이다. 그러나 상위 60%에 해당하는 대학에만 재정을 지원하고 하위 대학의 경쟁을 가속화 한다는 점에서 이전 정부 정책과의 큰 차별점이 없다는 것이 현장의 중론이다.

3주기 진단을 앞두고 대학 총장들은 재정 지원 대학의 확대를 요구했다. 지난 7월 열린 하계 대교협 세미나에서는 재정 지원 대학을 95%까지 확대해 달라는 의견이 나왔다. 이미 한계 상황에 몰린 재정지원제한대학을 선별한 만큼 대다수의 대학에는 재정적 지원을 해달라는 목소리였다.

총장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지난 9월 52개 대학의 일반재정지원 제한이 확정됐다. 대교협 회장단은 “보고서의 우열로 생긴 근소한 차이로 국비지원을 제한했다”면서 “회생 불가능하거나 도덕성을 결여한 극소수의 한계대학에 국한하자던 요구와 달리 권역별 줄 세우기에 입각해 이분법적 처분을 내렸다”고 반발했다.

대학에서는 탈락 대학에 대한 구제책 마련과 혁신지원사업비 규모 확대를 촉구했다. 이에 지난 15일 교육위원회 예산소위를 통과한 2022년도 교육부 예산에는 미선정 대학을 구제하는 내용이 담겼지만 미선정 된 52개 대학 중 또 일부 대학만으로 확대하는 것이어서 또 다른 불만이 제기된다. 동시에 탈락한 대학을 지원하는데 있어 그 기준을 두고 논란이 일면서 교육부 스스로 신뢰도에 타격을 입힌 꼴이 됐다.

■한국판 미네르바 왜 안 되나= 대학평가가 대학의 재정 확충을 가로막고 있다면 대학의 혁신을 막는 규제도 있다. 혁신적인 대학을 말할 때 미네르바 스쿨은 빠지지 않는다. 한국 대학 역시 미네르바 스쿨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판 미네르바 스쿨의 탄생은 아직 요원한 상황이다.

미네르바 스쿨은 모든 수업을 온라인으로 하는 이른바 ‘無캠퍼스’ 대학이다. 국내 대학은 ‘대학설립·운영 규정’에 따른다. 이에 △교사(학교 건물) △교지(학교 부지) △교원 △수익용기본재산 등 4대 요건이 필수다. 이 조건을 갖추지 못하면 대학 설립이 불가능하다. ‘無캠퍼스’ 실현이 어려운 이유다. 16일 교육부가 ‘인재양성 정책 혁신방안’을 통해 4대 요건을 완화하겠다고 밝혔지만 그 구체적인 안은 내년쯤 모습을 드러낼 전망이다.

또 다른 규제였던 온라인 수업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대폭 확대됐다. 기존에 대학은 20%에 한해 원격수업이 가능했다. 그러나 지난해 초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비대면 수업이 불가피해지면서 교육부는 이 상한선을 폐지하고 수업의 100%를 원격수업으로 할 수 있도록 규제를 확대했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이마저도 유지했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상 대학 재정의 대부분을 등록금으로 충당하는 한국 대학들이 수익사업을 할 수 없다는 점도 대학의 혁신을 가로 막는 부분으로 꼽힌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미네르바는 영리 법인인 미네르바 프로젝트와 비영리법인인 미네르바 스쿨로 나뉜다. 두 법인의 이사진과 목적은 다르지만 미네르바 스쿨은 미네르바 프로젝트의 지분을 가지고 있고 미네르바 프로젝트에는 투자도 가능하다.

김충석 신라대 총장은 ‘지역대학 위기 극복을 위한 사립대 총장 간담회’에서 이런 부분을 짚었다. 신라대는 학령인구 감소 여파로 입학생 정원이 300여명 줄어든 상태다. 이에 김 총장은 정원감소로 발생한 대학 유휴 건물을 수익용으로 변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부산시에 요청했다.

결국 대학의 등록금은 동결이 된 채로 수익사업도 할 수 없는 국내 대학은 정부 재정에 더욱 기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다양한 시도와 혁신을 위한 노력보다 재정지원사업 수주에 에너지를 쏟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대학들이 학교 건물을 활용한 수익사업 허용 등을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포지티브 규제 방식에서 네거티브 규제로 바뀌어야= 그밖에도 대학들이 고등교육 혁신의 장애물로 꼽는 규제들이 많다. △해외캠퍼스 설립 △폐교대학 청산 △산학협력 규제 △외국인 학생 대상 과정 편성 등 대학이 새로운 산업과 분야에 도전하는데 걸림돌이 곳곳에 숨어있다.

전문가들은 고등교육의 발전과 빠른 변화에 대처하기 빠른 규제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김헌영 강원대 총장은 하계 대교협 세미나에서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 등으로 세상이 빠르게 바뀌는데 대학 발전은 포지티브 방식의 규제에 막혀있다”면서 “네거티브 방식으로 대학이 해서는 안 되는 얘기하고 나머지는 자율적으로 하도록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인성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사무처장 역시 네거티브 규제 방식에 동의한다면서 “규제 샌드박스와 네거티브 규제가 함께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사무처장은 “포지티브 규제는 건건이 사안마다 규제 상황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며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교육부의 입장만 기다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1일 열린 본지 프레지던트 서밋에서 “대학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있어 20년도 넘은 1990년 중반의 4대 규제가 아직도 적용되고 있다”면서 “이 문제만 해결 돼도 대학들이 자체적으로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지희 기자 easy@unn.net

Copyright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전체보기
메뉴는 로그인이 필요한 회원전용 메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