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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과정 月60만원, 생계걱정에 연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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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 한 국립대 P교수는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대학 이공계 학생들 사이에서는 P교수의 행태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는 대학원생들을 시켜 집안 허드렛일을 하는 것은 물론, 정부 지원 연구비를 사적인 용도로 쓰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서 그는 ‘괴수’로 불린다. ‘괴수’란 대학원생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지 않은 교수를 일컫는 일종의 은어다.

◈교수와 제자는 주종관계?=국내에서 손꼽히는 이공계 대학원 박사과정 5년차인 A(27)씨는 연구실 내에서 연구비 관리를 맡는 ‘계정’역할을 맡았다가 연구비 유용의 ‘공범’이 돼버렸던 경험을 갖고 있다. 연구비 사용내역을 일일이 보고해야 하는 A씨는 개인 물품을 구입하는 지도교수에게 몇 차례 이의를 제기했지만, 돌아온 것은 심한 꾸지람뿐. 결국 A씨는 교수가 시키는대로, 사용 내역을 조작할 수밖에 없었다.

A씨는 “그래도 개인적인 불이익을 주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처럼 연구실 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지도교수에게 대항하는 것은 대부분의 대학원생들에게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다. A씨의 경우는 그래도 얌전한 편에 속한다.

지방국립대 생명공학 전공인 박사과정 5년차 B(28)씨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B씨는 논문 연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는 프로젝트(국가기관 또는 민간기업에서 의뢰하는 연구과제)에 참가하기를 거부했다가 지도교수로부터 ‘찍혀’ 논문 지도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논문 초고를 제출한 지가 1년이 넘었지만, 지도교수는 “실험 데이터가 부실하다”거나 “영문 구사가 수준이하”라는 등의 개인적인 모욕까지 주며 논문 지도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괴수’가 돼버린 지도교수는 30대에 해외 유명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따와 촉망받던 같은 과 선배. 집안 형편이 어려워 생계까지 위협받고 있는 B씨는 학업을 중단할 위기에 처해 있다.

◈학문은 부자들의 전유물?=올 2월 박사학위를 받는 C(29)씨는 지난 4년 동안이 꿈처럼 회고된다. 그와 함께 공부했던 동기들 가운데서도 대학원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중도에 학업을 그만둔 사례가 허다하다. BK21지원을 받는 C씨 연구실의 연구비는 석사과정 40만원, 박사과정 60만원이 전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연구만 바라보고, 쥐꼬리만한 연구비로 연명하기에는 턱도 없이 부족한 액수다. 생명과학이라는 전공 분야는 밤낮, 휴일도 없이 연구실로 달려나와야 하는 일이 부지기수여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이미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있는 C씨의 어려움은 더 컸다. 다행히 부모님이 간신히 지원을 해줘 생계는 꾸려나갔지만, 나이 서른이 다 돼,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는 일은 쉽지 않다.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아, 끼니를 걸러가며 생활한 적도 한 두번이 아니다. C씨는 “학문도 부르주아의 전유물”이라며 자조섞인 웃음을 지었다.

국내 유수의 이공계 대학원 전자공학 박사과정 5년차인 D(30)씨도 요즘 돈 걱정 때문에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올해 아버지가 되는 D씨는 박시과정 연차를 넘긴 ‘연차 초과자’다. 교수가 끌어들인 ‘돈벌이용’ 프로젝트에 매달리다보니 정작 자신의 논문 연구는 뒷전으로 밀렸기 때문이다. 집안의 경제적 지원도 기대하기 힘든 D씨는 결국 학문의 꿈을 접고 산학장학생을 신청했다. 과학기술 전문관료가 되고 싶었던 꿈은 허무하게 사라졌다. 그나마 ‘돈줄’이 되는 것은 민간기업뿐. 그나마도 올해부터는 박사과정 연차를 넘겨 지원비가 끊기는 D씨는 없는 시간을 쪼개 과외 아르바이트를 해 볼 생각이다.

◈안전의 사각지대=국책연구소에 근무중인 E박사는 지난 99년 사고를 떠올리면 아직도 쉽게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에서 발생한 이 폭발사고로 3명의 젊은 과학도들이 목숨을 잃었다. 사고의 원인은 열악한 연구 환경과 안전사고에 대한 인식 부족 탓이었다.

E박사는 “당시 국내에 생소한 분야였던 플라스마 발파에 대한 흥미만으로 실험을 진행한 것이 참사를 불러왔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사고 이후, 연구실은 폐쇄됐고, 소속 연구원들도 뿔뿔히 흩어졌다. E박사도 다른 전공 분야로 진로를 바꿨다.

올 4월부터 ‘연구실 안전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연구실 안전법)’이 발효를 앞두고 있지만, 대부분의 연구실 안전 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안전교육이 강화되고, 일부 시설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삐걱거리는 나무 선반에 위험한 화학약품을 쌓아놓는 열악한 연구실 환경은 어디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99년 서울대 폭발 사고 이후에도, 연구실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003년 5월 한국과학기술원(KAIST) 풍동실험실 폭발사고로 1명이 목숨을 잃었고, 같은해 8월에도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나 1명이 숨졌다. 지난해에도 대전 유성구 SK대덕기술원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나 6명이 다쳤고, 2005년의 마지막날인 지난달 31일에도 대전 유성구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 화재가 발생했지만, 다행히 연구원은 소방대원들에 의해 구조됐다. 화학약품이 눈에 튀거나, 감전사고가 발생하는 일은 거의 일상에 가깝지만 외부에 알려지지도 않는다.

한 이공계 대학원 박사과정 연구원은 “연구실 안전법이 발효되고 나면, 실험실 사고에도 보험이 적용되지만, 화재나 폭발처럼 외부로 알려지는 사고를 제외하면 대부분 내부에서 무마되는 경우가 많아, 실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동현기자 offramp@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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